10월이면 생각나는 이야기
추억의 가을 운동회
언제까지 뜨거운 여름일 줄 알았는데 추분을 넘기니 가을이 온 것 같다
9월 달 마지막 달력을 넘기니 하늘이 참 높게 느껴진다
햅쌀밥이 입에 녹을 듯 맛있다
높은 하늘을 보면서 문득 아득히 먼 옛날 어릴 때가 떠오른다
시월이면 운동회 연습이 시작되곤 했다
흰 머리띠 검은 "부루마"(일본말,짧은 팬츠) 흰 웃도리, 모든 게 부족했던 때라
각양각색의 운동복을 입고 나온다
운동회날은 온 동네 잔치날이다
부모님들은 소풍 가는 기분으로 여러 가지 먹거리들을 준비한다
고구마 밤 뜰앞에 감나무에서 따온 풋감 호박 찐 것 등 보자기에 싸고
보리쌀 절반 섞어 팥 삶아 넣고 김치 나물 여러 가지 무쳐서 싸고
돗자리 둘 둘말아 끼고 부랴부랴 학교 운동장으로 모인다
아이들은 일찍 나서다가 돌아들어와 "꼭 와야 한다"고 다짐다짐하고서
늦을세라 달려간다
운동장에 만국기가 펄럭이고 본부석 천막이 세워지고 운동장에는 흰 횟가루로
이리저리 줄을 거어랴 선생님들은 바삐 왔다 갔다 운동장을 누빈다
선생님들의 목에 건 호루라기와 흰 운동화는 어찌 그리 보기 좋았는지....
교문 밖은 바로 장터가 펼쳐진다
국밥 솥이 걸리고 엿장수의 가위소리는 아침부터 요란하다
교문에 걸린 "ㅇㅇ국민학교 가을운동회"라고 쓴 현수막 아래로 들어설 땐
꼭 1등한 선수같은 기분이 드는 것은 나만이였을지 모르겠다
응원석에 앉아 부모가 왔는지 목빼고 보다가 교문을 들어서는 부모님을 보면 안심되어서
선생님의 목소리가 더욱 잘 들린다
확성기 소리 요란하게 행진곡이 울리고 경기 진행하는 호루라기소리며 출발신호 총소리가
펄럭이는 만국기와 높은 하늘과 발 디딜 틈 없는 운동장 관람석의 온 동네 사람들이 함께
어울려 가을운동회는 무르익어간다
일학년 50m 달리기에서 달려 나가다 넘어져 일어나더니 방향을 잃고 출발선으로 달려오니
바로 가라고 소리소리 지르던 동네어르신들....
지금 환갑을 넘긴 B대학교수 나의 동생 ...평생 놀리며 수십 년 전 가을운동회를 회상케 한다
그래도 3등 했다고 누우런 재생지 얇은 노트(일명 똥종이) 한 권을 받아들고 "엄마"하고
달려오던 모습이 눈에 훤하게 떠오르는 나의 가을운동회 추억이다
요즘은 도심에 운동장이 없는 학교가 많다
체육수업도 제대로 못 하는 현실이니 가을이라고 운동회를 할 수 있겠는가
먼 훗날 어떤 추억들이 힘들 때 잠시나마 미소 머금고 쉬어갈 수 있을런지 안타까움에 마음이 무거워진다
높고 맑고 푸른 가을 하늘이 오늘따라 60여 년 전 나의 추억 속에 가물거리는 가을운동회를 생각나게 한다
기자: 김계리아
다음글